마개조판 워커 불독 밀리터리

엄연히 똑같은 전차입니다. 



2차대전 이후에 제식 채용된 미국의 첫 경전차인 M41 워커 불독은 가볍고 빠른 전투차량의 수요를 충실히 채워줬습니다. 


방호력은 전작인 M24 채피와 큰 차이는 없었으나(최대두께 38mm), 76mm 장포신 전차포와 500마력 가솔린 엔진으로 대표되는 성능 향상은 1951년 첫 배치 이후 십수년이 지난 베트남 전쟁에서도 증명된 뛰어난 성과를 야기했습니다. 한적인 상황에서 적 기갑과 교전도 수행할 수 있으며 보병, 경차량에 효과적이고 야전 정비도 용이한 이 경전차는 세계 각국에 도입되었습니다. 주 고객 대상은 동남아, 유럽 그리고 남미에 위치했고 1960년 8월에 첫 50대를 도입한 브라질 육군도 여기에 포함되죠.


미국과 맺은 군사 원조 프로그램에 기반해서 도입된 첫 물량은 각 지역의 Mechanized Recognition Regiments 내 노후화된 M3 스튜어트 경전차를 대체했습니다. 이후 1970년대 초까지 340대의 워커 불독이 추가로 도입되었으며 이때 도입된 전차의 사양은 엔진/연료 계통이 개선되며 적외선 장비가 도입된 A1/A3 사양이였죠. 브라질 육군 내 M3 리, M4 셔먼를 대체한 이 워커 불독 경전차들은 브라질군의 주요 전력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주변국과 경쟁에서도 크게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이 전차들이 대규모 교전에 투입된 적은 없었지만 대외에 여러 번 모습을 비춘 적은 있었죠. 평시 리우 데 자네이로에서 열린 퍼레이드 행렬부터 1964년 쿠데타 당시 행정수도 브라질리아의 기간시설들을 방어하기 위해 투입된 모습까지... 1970년대에도 여전히 많은 수량의 M41이 육군에 남아있었습니다. 그러나 50년대에 도입된 기갑장비로는 냉전 중후기를 맞아 급변하는 전장에 효과적으로 대처할수는 없을 노릇이죠. 브라질군도 이를 감지해 본격적인 현대화 사업을 개시합니다. 


브라질 현지 개수형 M41C.


... 그러나 브라질의 기술적/재정적 상황상 타 선두주자들처럼 신형 차량을 앞서 개발하는건 어려운 일이였죠. 그리하여 브라질군은 이스라엘의 개수안을 주로 참고해서 현대화 사업의 기틀을 잡아갔죠. 2차대전 당시 개발된 구형 차량을 현대 전장에서 활용할수 있도록 개량하는걸 목표로 잡고 여러 결과들을 내놓기 시작합니다. 

대표적인 성과로써 스튜어트 경전차 기반 X1A2, 그레이하운드 정찰장갑차 기반 EE-9이 있죠. 당연하게도 M41의 개량 사업 또한 획책되어 90년대, 못해도 80년대까지 운용할수 있도록 목표가 잡혔습니다. 향후 해외에서 최신형 전차를 도입할때까지 그 공백을 메꾸는 목적이라고 해야할까요.


M41 워커 불독의 현대화 개량 사업을 담당한 민간 회사는 1912년 금고 제조업으로 시작한 Bernardini Industrial and Commerce Company입니다. 스튜어트 기반 X1A2를 개발한 곳이기도 한데, 원본을 거의 알아볼수 없을 만큼 개량된 X1A2만큼은 아니지만 거의 전방위에 걸쳐서 개수되어 M41B, M41C로 명칭되었습니다. (C형 한정)으로 코크릴제 90mm 강선포가 탑재되었고, 기존 가솔린 엔진을 스카니아제 디젤 엔진으로 교체하는 등 구동계통 전반에 걸쳐서 개수가 이뤄졌습니다. 이외 새 연막탄 발사기, 진보된 사격통제장치, 공간장갑 도입 등 다양한 성과가 엿보이죠. 


다만 C 형식에 도입된 코크릴제 90mm 강선포는 적잖은 문제를 일으켰죠. 비슷한 시기에 도입한 EE-9의 주포와 동일한 물건으로 통일하려는 의도였으나, 열악한 브라질제 탄약으로 관통력은 76mm보다 열등했고 발포 후 매연이 포탑 내부에서 환기되지 못한 문제는 끝까지 해결되지 못했습니다. 

이런 원본의 한계를 극복하고 1980년대 전장에서 생존성을 보장받기 위해 Bernardini는 좀 더 '대담한' 워커 불독 개량안을 획책하기 시작합니다. 단순히 원본을 이리저리 손보는것 뿐만 아니라, 아예 새 전차에 가까운 물건을 개발하는 거였죠.



각각 76mm, 90mm, 그리고 105mm 장착형.


코드명 X-30으로 알려진 'MB-3 Tamoyo' 사업은 1978년에 시작되었습니다. 향후 전장에서 경전차의 생존성은 의심되는만큼 개발 방향은 주력 전차에 가까워졌죠. 적 전차를 상대할 화력, 적 기갑세력 및 포병의 압박을 극복할수 있는 내구성,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기동성과 다양한 특징들을 모두 갖추기 위해 전면적인 재설계가 적용되었죠. 

차체의 전장은 0.7m 가량 늘어나 보기륜도 1개 추가되었으나 전폭과 전장은 오히려 소폭 축소해 피탄율은 줄었죠. 장갑형상 또한 포탄/파편 도탄을 중심으로 경사각을 주었으며 후기형에는 강철/세라믹 재질의 복합장갑이 도입되었습니다. 사이드 스커트 또한 도입되었으며 신형 연막탄 발사기를 탑재해 80년대 이후 전장에서 충분한 생존성을 확보하리라 기대되었습니다.


무장 또한 개선되었는데, 3세대 전차에 필수적인 디지털 사격통제장치, 레이저 거리측정계 및 전차장/포수용 전천후 야시경은 물론이요 가장 중요한 하드웨어인 주포도 새로 교체했죠. 

첫 번째 프로토타입에 사용된 주포는 기존 워커 불독의 76mm 강선포를 40구경장으로 신장시킨 자체개발품입니다. 두 번째 사양엔 M41C에 사용된 코크릴제 90mm 전차포를 바탕으로 Bernardini에서 개발한 40구경장 90mm 포가 적용되었습니다. 세 번째이자 최종적인 사양에는 국제 추세를 따라 로열 오도넌스제 105mm L7A3 강선포가 장착되어 확실한 공격력 또한 확보했습니다. 그리고 세 기종 공통적으로 7.62mm FN MAG 동축 기관총, 12.7mm M2HB 대공 기관총이 장착되었죠.


Tamayo 프로토타입에 탑재될 동력계통은 도입에 두 가지 경우의 수가 고려되었습니다. 하나는 사브-스카니아제 DSI-14 500마력 디젤엔진과 3단 전진과 1단 후진이 가능한 제네럴 다이나믹스제 HMPT-500 자동변속기, 다른 것은 디트로이트 디젤 8V-92TA 730마력 엔진과 1단 전진 및 후진이 가능한 엘리슨제 CD-500-3 자동변속기였죠. 

추중비는 물론 후자의 우위였지만 두 기종 다 자동변속기의 도움으로 제자리 등속선회가 가능했습니다. 원본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였지만요. 이로써 노상속도 시속 67km, 항속거리 550km를 확보해 3세대 전차와 동등한 수준의 기동력에 다다르렀죠. 이외 1.3m 심수도하가 가능했으며, NBC 방호장치를 옵션으로 구비할수 있는 이 전차의 중량은 당대 주력 전차에 비해 몹시 가벼운 30톤이였습니다.


독일의 크라우스-마페 사와 협력을 통해 완성된 첫 프로토타입은 1982년에 완성되어 1983년부터 85년까지 총 11개의 프로토타입을 완성해서 대외적으로 발표에 들어갔습니다. 1차 고객인 브라질 군부의 주목 아래에 몇 차례 시험을 거치며 페루, 파라과이에서도 시험을 가져 한창 진행되던 현대화 사업의 흐름을 타는 듯 했지만... 

해외에서도 막 도입되기 시작하던 신기술들이 대량 접목되어 그 가격이 부담스러웠을 뿐더러 국내의 강력한 경쟁자인 EE-T1 오소리오에 가려지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사업 가능성은 점차 희박해지는 가운데 80년대 말 브라질의 재정 상황이 악화되면서 브라질 군부는 전차 획득을 국내 개발에서 해외 도입으로 선회했죠. 수백대 가량의 M60A3 TTS와 레오파르트1A5가 도입되며 결국 이 전차도 EE-T1과 같이 역사 속에 묻히게 되었습니다. 



전번 글에 비해서 더 건조하고 재미없어진 느낌이... 본문에만 집중해서 그럴까요. 암튼 정진하겠습니다.



주요 참조 문헌

(중심격) http://www.ecsbdefesa.com.br/fts/M41.pdf
http://www.military-today.com/tanks/mb3_tamoyo.htm
http://www.globalsecurity.org/military/world/brazil/tamoyo.htm
http://tanknutdave.com/the-brazilian-bernardini-mb-3-tamoyo-tank/
http://www.militaryfactory.com/armor/detail.asp?armor_id=481

대전차 유도탄의 서막 밀리터리

돌팔매, 투창, 화살... 먼 옛날부터 사람이 먼 곳 무언가를 맞추려고 할때 가지던 한 가지 소망이 있었습니다. 


'이게 나 대신 뭔가를 알아서 쫒아갈수 있다면...' 수많은 전설과 신화, 이야기 속에서 알아서 목표물을 쫒는 화살들이 등장합니다. 그런 환상 속의 물건들을 쫒을 여유가 없다면 사람들은 명사수들을 동경하면서 투사체를 정확히 맞출 실력을 갈고 닦았죠. 이런 양상은 산업 혁명 이후 기계에 대한 심도있는 이해가 널리 퍼지기 전까지 별다른 변화가 없었고, 그때 사람들도 환상이 현실로 다가올거라고 쉽게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Fritz X.


VB-6 Felix.


RTV-N-2 가고일.


그리고 Hs 293. 



옛날에는 '미사일'이라고 하면 모든 투사체를 가리키는 단어였습니다. 20세기 초 미국에서 당대 최신 기술이였던 비행기와 자이로스코프를 접목해서 비행어뢰를 만들던 시절에도 이는 변하지 않았죠. 성능 부족과 신뢰성 문제로 잊혀진 비행어뢰를 뒤로 하여 첫 미사일, 로켓 또는 제트엔진을 갖추고 목표물을 쫒는 유도탄은 2차대전의 포화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라디오, 로켓과 제트엔진에 대한 기술적 이해가 이에 큰 몫을 수행했습니다.

기존 항공기를 개수한 아프로디테 계획, 미스텔처럼 오늘날 도태된 방법도 있었으나 큰 성과를 거두어 오늘날까지 그 계보가 이어지는 물건도 적지 않았습니다. 추진장치라는 제약이 없는 유도폭탄은 독일의 Fritz X, 미국의 VB-6, GB-4, Azon같은 몇몇 실험병기들이 있었고 특히 Fritz X는 실전에 투입되어 적잖은 성과를 거뒀습니다. 재밌는 점으로 초창기 유도병기 개발동기에는 회피기동을 수행하는 함선을 타격하는 대함 임무가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이는 폭탄뿐만 아니라 미사일에도 적용되죠.

테러병기로 악명높은 V1, V2는 추진장치, 추력제어장치 그리고 유도수단 등 오늘날 미사일이 갖춘 대부분의 요소를 정립한 최초의 유도탄 중 하나입니다. 그 완성도는 훗날 순항 미사일이나 ICBM, 우주 계획에도 큰 영향을 주었을 정도죠. 규모가 작은 쪽으로 시선을 전환한다면 최초의 대함 미사일인 독일의 Hs 293과 미국의 RTV-N-2 가고일이 있으며, 눈높이를 훨씬 낮춘다면 Kramer 박사의 작품 X-4, X-7이 있겠죠. 



ATGM 이야기에서 나오는 공대공 미사일?


1943년 초 영국 공군의 거센 폭격에 대항하려 독일군 사령부는 요격 수단들을 점검하며 대응하기 시작했습니다. 군용 항공기에 대구경 기관포 또는 대공 로켓을 장착하고, 새로운 요격기를 개발하고, 대공포 숫자를 확충하고... 이런 기존 수단들을 개수하는 것뿐만 아니라 새로운 요격 수단 또한 탐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 항공기 기총의 사격통제장치를 개발하던 Ruhrstahl의 Max Kramer 박사도 1943년 중순부터 새 요격 수단 개발에 착수하기 시작했죠. 목표는 적 폭격기 방어기총의 범위 바깥에서 발사가 가능한 유도병기를 확보하는 거였죠. 추진장치로 BMW제 109-548 액체연료 로켓을 두었고 시속 1150km으로 1.5 ~ 4km 정도 순항할수 있어 방어기총 사거리에서 벗어날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로켓 탄도를 안정화하기 위해 미사일은 분당 60번 회전했고 자이로스코프를 설치해 직선 순항을 유지할수 있었죠. 유도 수단으로는 미사일 동체에 장착된 두 개의 와이어를 사용한 MCLOS 방식인데 조종사는 미사일의 꼬리날개를 조이스틱으로 조종할수 있었습니다. 유도수단으로 사용되던 라디오 통신을 제끼고 와이어를 사용한 이유는 재밍 방지로 추정됩니다.

또한 X-4의 신관은 다수가 사용되었는데, 발사 후 7초 뒤에 작동하는 접촉신관과 도플러 효과를 이용한 근접신관, 그리고 30초 뒤에 자폭하는 시한신관이 있었죠. 탄두로는 폭발반경 8m의 20kg 폭약이 장착되어 오늘날 AIM-9의 폭발반경과 비슷했습니다. 이런 특징들이 겹쳐 X-4를 사용하는 조종사는 적 폭격기 편대의 후방으로 접근한 후 목표물과 약 2 ~ 2.5km 떨어진 곳에서 사격, 미사일의 근접신관이 작동할 범위까지 그것을 조종할 것을 기대받았습니다.





1944년 8월 무렵에 첫 프로토타입이 완성되어 같은 달 11일에 Fw 190에서 첫 사격 시험을 가졌습니다. 이후 Me 262나 Ju 88에서도 사격 시험을 가졌으나 문제점도 두각되었죠. 본디 단좌기에서 사용할 병기로 점찍었던 X-4였으나 조종사는 자신이 탑승한 항공기와 미사일을 동시에 조종해야하는 난해한 상황에 빠졌습니다. 그리하여 단좌기에는 기존 대공 로켓을 사용하고, 복좌기 및 다인승 항공기에 이 미사일을 탑재하는걸로 결정했습니다. 이후 미사일은 양산에 돌입하여 1945년 초 시점까지 약 1000 ~ 1300여발이 완성되었으나 연합군 전략폭격으로 부품 생산공장이 무력화되자 생산이 중단되고 실전에 투입되지도 못한채 종전을 맞이합니다.

세계 최초의 공대공 미사일 중 하나가 개발되는 동시에 이걸 토대로 대전차 미사일을 만드려던 시도도 있었죠. X-4의 설계를 간략화한 후, 추진제로 고체 연료를 사용하고 탄두를 접촉신관이 장착된 성형작약으로 교체한 X-7 '붉은 망토' 대전차 미사일입니다. 사거리 1000m 내에서 RHA 200mm를 관통할거라 기대되었던 이 병기 또한 수백발 단위로 생산되었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보고에는 이 병기가 동부전선에서 사용되었다는 말이 있지만 그것 외엔 별다른 언급 없이 종전을 맞이했을 뿐이죠. 그러나 '붉은 망토'는 전후 무기사에 한 획을 그을 가치가 있었습니다. 

페이퍼클립 작전과 함께 Kramer 박사와 그의 동료 몇 명도 미국으로 들어왔고 이 미사일의 노하우를 전달해줬죠. 그러나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미국 군부는 이 무기에 대한 관심을 잃어 이 미사일의 명맥을 잇는 신병기를 개발하는데 주저했습니다. 그 사이에 미사일과 그 청사진을 가지고 신무기 개발은 벌써 시작되었죠.




SS.10 (미군 제식 MGM-21)


Malkara 미사일.


3M6 Shmel


그리고 우리 칭구 토우.



1948년 프랑스에서 이 무기의 가능성을 눈여겨보며 새 미사일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보병이 휴대할수 있을만큼 가볍고 저렴한 이 미사일은 Nord Model 5203이라는 명칭과 함께 1952년에 시험 사격이 이뤄졌고 미군도 여기에 관심을 가졌죠. 추진장치로 2단 고체 로켓연료, 사거리 1500m에 무게 15kg과 RHA 400mm를 관통할수 있어 숙련된 사수가 명중시킨다면 당대 대부분의 전차를 격파할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이후 1955년에 개발 완료된 이 미사일은 지대지 미사일이라는 성격에서 따와 SS.10 (sol-sol: Surface to Surface)이라는 명칭과 함께 세계 각국에 수출되었죠. SS.10의 첫 도입국이자 사용자인 이스라엘은 수에즈 전쟁 당시 이 미사일을 사용하여 이집트의 전차를 격파하는 활약을 거뒀습니다. 동시기에 프랑스는 대형 차량이나 항공기에 사용할 이 미사일의 대형판 또한 개발했고 이를 SS.11로 명칭합니다. 두 병기 다 나토 내 대부분의 동맹국에도 수출되었고 미군조차 예외는 아니였습니다. 미국이 SS.10을 도입하기 전 X-7을 바탕으로 개발하던 SSM-A-23 Dart를 가지고 있었으나 프랑스산 미사일을 도입했죠. 

유선 MCLOS 대전차미사일이라는 아이덴티티는 전세계에 수입되었습니다. 선구자인 SS.10을 토대로 영국은 HESH 탄두를 사용하는 Malkara를 내놓고, 소련은 3M6 Shmel과 이후 완성된 9M14 Malyutka를 내놓죠. 미국산 유선유도 대전차미사일의 개발은 SS.10과 SS.11이 출시되던 1950년대 중반에 시작되어 60년대에 오늘날까지 그 명맥이 이어지는 결과물을 내놓습니다. 그거슨 바로 오늘날 국군도 사용하는 BGM-71 TOW


X-7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50년밖에 안걸렸습니다 여러분.

올해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게임과 스팀


케이나인게이나인하앍하앍


사뒀다가 안하던 워게임 레드 드래곤을 중독 수준으로 빠져서 즐기고 있습니다. 등장 시기가 게임 배경에 비해 좀 많이 늦은 병기긴 하지만 하이엔드 포병이 없는 한국/청룡 연합을 위해 내려준 유겐의 자비라고 해야할까요. 북괴 T-90(...)마냥 프로토타입 기준을 잡는다면 일본 M270도 불가능의 영역은 아니지만 안넣어준 이상 K-9이 유일한 희망이죠. 

암튼 성능이 좋습니다. 존나많이 좋아요. 155mm 3연발을 40km급 사거리에 정밀하게 꽂아넣는 물건을 어찌 안 좋다고 하겠나요. 숲속에 집결한 소프트 타겟이나 시가지로 진출하는 보병대는 물론이요 대포병까지 해먹는걸요. 땅크야 단단한 물건인만큼 힘들지만 그거까지 기대하면 도둑놈 심보. 이겨도 져도 비겨도 언제나 멋진 활약을 선사해주는 이 녀석이 있기에 저는 오늘도 청룡 덱을 붙잡고 있죠.


뭐 K9 말고도 워게임 관련해서 재미난 이야기 해줄거리가 하나 있긴 하네요. 

물론 워게임이 저처럼 노답노잼밀따꾸를 위한 물건이긴 하지만 이것도 이것 나름대로 밈이 있죠. 군대/국가 관련된 밈인 만큼 원래부터 비범하기 짝이 없었는데 개사기 팩션 둘(이스라엘/유고슬라비아) 둘이 추가되면서 폭주했을 따름. 한 번 찾아보세요.

이 양반들 정신머리가 참... 





암튼 내년에 봅시다 여러분. 막짤은 우리 모두의 자화상입니다.

Happy New Year 2017!

남미산 3세대 주력전차 밀리터리

서두는 역시 본문과 상관있는(?) 짤로 해야죠. 출처는 여기로




전차가 전쟁터에 처음 등장한지 1세기가 흘렀습니다. 


1916년 영국이 개발하고 1차대전에 투입한 Mk. 1 지상함은 참호전을 타개할 신병기, 장갑차량의 롤모델로 자리잡았죠. 견고한 장갑, 강력한 화력과 준수한 기동성을 두루 갖춘 전차는 전선 돌파, 또는 사수에 절실한 장비였으며 이에 매혹된 대부분의 열강이 전차 개발에 뛰어들었습니다. 몇몇 과도기적 모델이 등장했으나 1918년 종전까지 자국산 전차를 실전투입한 국가는 영국, 프랑스 그리고 독일 외엔 없었죠.

처음에는 소수 국가만 전차를 개발/생산할수 있었으나 시대가 지나며 점차 많은 국가들이 전차를 개발할 역량을 갖추게 됩니다. 옛 시대의 열강부터 냉전기 군사동맹의 회원국, 신흥 공업국... 오늘날에서야 수많은 나라에서 개발하고 생산하는 전차들에 감탄할수 있으나 그게 하루 아침만에 쌓아올려진건 아니죠. 개발/생산할 계기, 목표, 그리고 결과까지 세계 각국마다 천차만별인 기갑차량의 개발사례들을 나눠본다면 크게 선두주자와 후발주자 두 가지로 나눌수 있겠죠.


영국, 러시아, 독일, 미국, 프랑스... 전차가 처음 선보인 1차대전부터 꾸준히 기갑차량의 트렌드를 주도하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격변하는 전장에 맞춰 전차를 연구하는 선두주자들입니다. 국력에 걸맞는 압도적인 개발역량, 이에 비례하는 성능을 보인 전차들은 전세계 각국에 도입되었고 전쟁터에 꾸준히 투입되었습니다. 물론 성능과 성과가 비례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요. FV 4201 치프틴이라든가 T-72M이라든가...

또는 독일, 일본, 프랑스 기갑차량처럼 세계대전의 영향에 휘말려 기갑체계 전체가 재편된 나라들도 따져볼수 있겠죠. 그들의 기갑차량들의 우수성과는 별개로 그 발전사가 미국, 영국과 러시아처럼 거의 100년에 가까운 연속성을 이어가는건 아니니까요. 또는 체코, 스웨덴처럼 그 규모는 앞서 나열한 열강들처럼 방대하지 않지만 옛날부터 독자적인 요구사항과 기술을 바탕으로 성공적인 기갑차량들을 개발/생산하는 국가들도 있기 마련이죠.

중동의 영국군 전차, 100년 전 그리고 후.


반면 자국산 전차를 원하는 후발주자들은 당연하게 선두주자의 전차를 본따기 마련이죠. 무에서 유를 만드는건 매우 힘든 노릇이니... 그런만큼 준비물은 산더미같고 이를 하나하나 획득하기 위해 후발주자들은 각고의 노력을 다해야만 하죠. 이를 대략적으로 풀어보자면 다음과 같겠죠.
(1). 자국군이 사용할 전차의 요구사항, 도입수량을 모아 개발목표로 정립하고, (2). 요구사항을 충족할 핵심기술들을 개발하거나 해외에서 거래 또는 원조를 통해 도입하고, (3). 심화 연구를 통해 대략적인 컨셉을 구체적인 형태로 다듬고, (4). 수십톤에 다다르는 중장갑 전투차량을 생산할 공장과 인재 그리고 예산(중요)를 확보하고, (5). 프로젝트 결과로 양산될 차량들의 판매처를 확보, (6). PROFIT! 

후발주자들의 성공적인 기갑 개발사를 가져오는데는 그리 큰 노력까진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 글을 보고 계실 여러분 상당수가 거주하는 동아시아 주변에서만 세 가지 성공사례를 꼽을수 있으니까요. 간단하게 3세대 전차만 따져본다면...

오랜 기간의 기술교류, 협력과 지원을 통해 인프라를 새로 구축한 후 성공적인 외국 전차를 본따 완성시킨 한국의 K1 시리즈, 이전 세대의 경험과 축척된 기술을 바탕으로 당대 수준급의 전차로 개발된 일본의 90식 전차, 외산 전차의 역설계와 기술도입의 반복 끝에 3세대 전차의 토대를 닦은 중국의 85식 2형 M. 처해진 환경과 역량은 상이했지만 결국 세 나라는 K2 흑표, 10식 전차, 99식 전차와 같은 수준급의 후계차량을 개발하고 생산하게 됩니다. 타국도 크게 상이하지 않은만큼 어느 정도의 의지와 역량이 갖춰지면 어떤 나라라도 주력 전차를 생산할수 있습니다. 그 수준에서 어느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요.


아르헨티나군 TAM. 

그리고 브라질산 MB-3 Tamoyo. 둘 다 중량은 30톤급으로 똑같습니다.


그렇다면 남미는 어떨까요? 

재밌게도 남미의 기갑차량 개발사는 2차대전까지 거슬러 올라갈수 있습니다. 바로 아르헨티나가 1941년에 개발한 Nahuel D.L.43 중형전차죠. 1930년대 당시 혼란스러운 세계정세로 인해 중립국의 위치에서 해외 전차를 도입하기 어려웠던게 주요 개발동기였습니다. M4 셔먼의 현가장치와 보기륜을 포함한 차대를 차용하고 75mm 크룹제 야포, 500마력 수랭식 12기통 엔진을 사용하는 등 원본과 유사한 특징을 지녔죠. 12대가 생산되어 아르헨티나군에 배치되었지만 추가 생산된 차량은 없는데, 이는 2차대전 종전 후 셔먼 전차의 재고를 값싸게 구할수 있었기 때문이죠. 먼저 연합군에 가담한 브라질 육군은 M3 스튜어트, M4 셔먼 및 하프트랙같은 미군 장비를 더 일찍 도입했지만요.

이때 들여온 장비가 1970년대까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양국군의 기갑장비 다수를 차지하게 됩니다. 그 사이에 AMX-13, M41 워커 불독 및 M113 등 일부 차량들이 도입되었지만 그걸로 시대의 흐름을 따라잡긴 역부족이었죠. 비슷하게 군 현대화가 미진했던 국군이 1970년대 중반부터 현대화 사업을 시작하듯, 두 나라 또한 비슷한 시기에 군 내 장비들을 신형으로 교체하기 시작합니다. 브라질이 자체개발에 나선 주요 동기 중 하나는 카터 행정부의 무기판매 제약에 따른 군수 파트너쉽 결렬이였습니다. 이 제약은 레이건 행정부 이후 롤백되지만 그동안 브라질 정부와 기업 합작으로 이뤄진 군수산업 성과는 괄목할 것이였죠.

아르헨티나군은 독일과 합작해서 신형 전차와 장갑차를 획득했습니다. 마르더 IFV에 기반해서 개발한 차체에 레오파르트 1의 포탑을 얹은 TAM(Tanque Argentino Mediano), 그리고 그 차체에 보병 탑승칸을 확보한 후 20mm 기관포탑을 얹은 보병전투차 VCTP(Vehículo de Combate Transporte de Personal). 이 둘은 각각 200여대, 100여대씩 배치되어 2016년 현대까지 아르헨티나 육군의 주요 전력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브라질군의 초기 결과물은 2차대전 당시 차량을 크게 손 본 모양인데, M8 그레이하운드를 본딴 차체에 경전차 포탑(초기형은 M3 스튜어트의 37mm, 후기형은 프랑스제 AML의 90mm.)를 장착한 EE-9 Cascavel, EE-9을 바탕으로 차륜형 APC로 개수한 EE-11 Urutu 그리고 M3 스튜어트를 가지고 대대적인 개선을 거친 Bernardini X1A가 대표적이죠. 
경차량이 브라질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시장에서도 판매되는 등 가능성을 보여줬으니 군수업체들은 고무되었죠. 경차량 생산계획 외에 중장비 개발 또한 하나하나 획책되기 시작했습니다. Astros 2 MLRS처럼 성공적으로 안착된 물건도 있고, M41 워커 불독을 기반으로 주력전차를 만든 MB-3 Tamayo처럼 매우 독특한 물건이 있죠. 복합장갑, 디지털 사격통제장치와 90mm 강선포의 콜라보레이션인만큼 다뤄보고 싶지만 이번 시간엔 후술할 물건에 집중해야겠네요. 




EE T1 오소리오의 개발은 군부의 요청 없이 독자노선으로 1982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브라질 군수업체 Engesa 주도로 시작된 계획의 목표는 해외판매 우선, 차후 브라질군 대상 판매도 기대할수 있을 최신예 주력 전차였죠. 국내 도입보다 해외 수출에 더 신경을 기울였던 요인으로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거둔 성공적인 수출 실적도 한 몫 했습니다. 냉전 후기 정세상 서방 주요국의 주력 전차를 수입할수 없는 국가들의 틈새시장을 노렸다고 해야할까요. 열강 대비 인프라는 미홉했으나 기업 주도 계획인만큼 정부 지원은 미홉했고 Engesa는 개발비에 1억달러 이상을 투자합니다. 

목표는 해외시장 진출 우선이였던 EE T1이지만 회사는 두 가지 개발안 사이에서 고민하게 됩니다. 그 원인은 브라질 육군이 당시 차세대 전차의 조건으로 내세운 중량제한 36톤, 전폭 3.2m라는 빡빡한 제한이였죠. 특히 후자의 원인은 브라질 철도 환경의 한계에 있었는데, 비슷하게 자국의 철도 환경에 맞춰 설계된 일본의 90식이 겪었던 문제를 생각하면... 따라서 Engesa는 서방권 표준에 좀 더 가까운 44톤급 120mm 전차인 EE T2, 그리고 브라질 육군의 요구조건에 맞춰서 설계한 35톤급 105mm 전차 EE T1을 둘 다 개발하게 됩니다. 비슷한 제약에 걸린 타사의 MB-3도 30톤, 전폭 3.22m로 맞춰졌고요.

80년대 최신예 주력전차를 개발하기 위해 Engesa는 포탑 설계를 빅커스 사에 전담하고 차체 설계는 헨셸, 포르쉐 등 독일 회사와 합작하며 외국산 장비와 기술을 도입했습니다. 차량에 적용된 복합장갑은 Engesa에서 개발하였으나 영국산 쵸범 아머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EE T1의 포탑은 105mm L7A3 강선포에 탄약 45발 적재, EE T2의 포탑은 120mm 프랑스산 GIAT G1 활강포에 탄약 40발을 적재하도록 설계되었죠. 또한 T2의 포탑은 동구권 125mm 활강포도 탑재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포탑 상부에 12.7mm M2 중기관총이 대공용으로 부설되었고 7.62mm 기관총이 동축기관총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이외 연막탄 12발도 장비하고요.

전차에 탑승하는 승무원 구성은 전차장/운전수/탄약수/포수 4명으로 운전수 제외 3명이 탑승하는 포탑에는 전차장, 포수용 열화상 야시경, 레이저 거리측정기와 탄도계산기 등 현대적인 사격통제장치가 갖추어졌고 전차장은 포수와 독립되어 목표를 발견/추적할수 있습니다. 운전수가 탑승하는 차체도 복합장갑과 강철판으로 보호받죠. 3세대 전차급 기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MWM TBD 234 12기통 1100마력 엔진을 탑재해 노상속도 최대 70km/h, 항속거리 550km에 연료 1354리터를 적재합니다. 레오파르트 2와 유사한 무한궤도, 보기륜 6개 및 사이드 스커트와 현가장치를 통해 무난한 험지 돌파가 가능하며 수심 1.2m까지 특별한 장비 없이 도하 가능했습니다. 

이외 옵션으로 NBC 방호장치를 추가할수 있으며, 차후 계획에 따라 오소리오의 차체는 자주포 및 자주대공포 같은 다른 차량에도 적용할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현대 전차로써 갖춰야 할 미덕은 빼놓은게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죠. 그리고 1985년 EE-T1의 첫 프로토타입이 완성되었습니다.


장밋빛 미래가 약속되던 한때...


이 물건은 당초 계획대로 주요 고객으로 점찍힌 사우디군의 타 후보기종과 경쟁을 벌였습니다. AMX-40, M1 에이브럼스 그리고 챌린저 1이 참여한 이 경쟁에서 EE-T1 오소리오는 우수한 성적으로 타 후보기종에 우위를 점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M1 에이브럼스에 우위를 보인 점을 주목할만한데, 비슷한 수준의 화력(또는 120mm GIAT 장착으로 우위)를 더 값싼 가격(대당 380만 달러)에 제공받을수 있고 사용 및 유지가 에이브럼스에 비해 훨씬 편하다는 점이였죠. 오늘날 에이브럼스가 자랑하는 뛰어난 실전경험도 이때는 없는거나 다름없으니까요. 브라질 군부와 Engesa는 상황을 낙관적으로 봐서 약 1000대, 40억 달러 규모의 거래가 성사될거라고 내다봤죠. 판이 커진만큼 정부의 주목도 끌었으며 브라질군에도 300대 가량 요구가 생겼습니다. 정부 요인들이 세계 각국에서 판촉에 열의를 올리며, 시험차 브라질군에 20대 우선 배치 등 계약 성사가 가시화되는듯 싶었으나...


미국 정부의 M1 판매를 위한 방해, 그리고 사우디 정부의 호응 미비에 따라 도입 차량 댓수가 축소되더니 1990년 시점까지 계약 서명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Engesa는 수천명의 사원들을 해고하고 파산 보호 절차에 들어갔지요. 설상가상으로 걸프전에서 보여준 M1 에이브럼스의 빼어난 실전성과로 인해 격차는 한없이 벌어지고 말았죠. 따라서 사우디는 M1을 채택하고, 브라질군 도입 계획도 프로토타입 2대를 끝으로 흐지부지되고 회사 운명도 1993년에 종언을 고합니다. 

오늘날 우리 입장에서 보면 참 안타까운 결말이기도 하죠. 그래도 한편으로는 이 전차가 사우디군에 최후 제안대로 200대가 도입되었다해도 타 경쟁자에게 치여서 설 길을 잃을거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냉전이 끝난 이후 M1 에이브럼스나 레오파르트 2같은 옛날에는 노리기 힘들었던 최신예 전차가 시장에 풀리기 시작했으니까요. 상업적 목표를 노린 전차가 상업성에 실패하면 존재가치를 상실하는거죠. 이런 악재에 겹쳐 브라질군도 재정 부족을 원인으로 들며 M60A3나 레오파르트1같은 한물 간 물건을 도입했으니 참 비극적인 마무리라고 평할수 있겠습니다. 

... 그래서인지 자료수집 도중 찾은 브라질 밀리터리 포럼에서도 이 땅크의 운명을 슬퍼하는 글이 보이더군요. 물론 여기서도 이견을 가진 글도 있지만... 뭐 인터넷 세상이 다 그런거 아니겠습니까. 그쪽 링크는 여기로(포르투갈어-번역기 필요)

이번 글을 여기서 마치기 전에 하나 더, 그렇다면 남미 최초의 3세대 전차 대량 도입국은 결국 어디냐고요?


칠레군의 레오파르트2A4요. 이녀석 도입댓수가 아르헨티나에 배치된 TAM과 거의 비슷...



한발늦은 성탄절 선물이 되겠습네다. HOHOHO

기갑거포주의의 북유럽산 끝판왕 밀리터리



하이브리드 경전차 Strv m/42-57 Alt A.2

써야지... 써야지... 하다가 계속 미뤘는데 알파캣님의 Strv M/42 개수형 소개글에 뽐뿌받아 작성합니다. 


스웨덴 기갑은 세계대전부터 그 개발사가 이어져오며 지금까지도 독특한 컨셉과 탄탄한 내실을 가지고있죠. CV90, Strv 103(S-탱크), Ikv 91, PvB 302... 냉전 후기 기갑계의 대세에 자극을 받은 이 녀석도 예외는 아닙니다. 냉전 후기에 공개된 여러 MBT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스펙과 기갑거포주의를 선도할 경이로운 특징을 갖춘 주력 전차, Strv 2000입니다.


1970년대 말에서 80년대로 들어오며 각국 기갑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죠. 욤 키푸르 전쟁 이후 신기술의 도입과 함께 각국은 미래 전장을 극복할수 있는 차세대 전차를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스웨덴 육군 또한 이에 자극받아 80년대 초부터 여러 시험용 전차들을 개발합니다. 기존 S-탱크와 유사한 형상의 UDES 03, UDES 03의 차체를 사용하되 신형 포탑을 적용한 UDES 14, 자동장전장치의 백업을 받는 20~30톤급 105mm 경전차 UDES 15/16, 동시대 미국의 시험용 경전차 Expeditionary Tank를 연상시키는 독일산 마더 IFV의 차체+105mm 무인포탑의 결합 UDES 19, 그리고 기차놀이(...) 장갑차 BV-206에서 영감을 얻은 120mm 대전차 자주포 UDES 20이 있죠. 

UDES 03


UDES 14


UDES 15/16


UDES 19


UDES 20


이런저런 실험용 전차들을 통한 기술과 경험의 축적을 통해 스웨덴 군부는 차세대 전차의 목표를 정립했습니다. T-72, T-80에 성능상 우위를 점할 여러 목표들이 세워졌죠. 그 일례를 들자면...
1. 단단한 장갑. 적 날개안정분리철갑탄과 대전차 미사일을 전면 180도, 기관포 사격을 후면 180도에서 견뎌내야 함. 또한 탄약고에 피탄해도 승무원들이 생존할 수 있어야 함.
2. 유연성. 전차는 모든 방향으로 사격하며 이동할 수 있어야 하며 전차장의 시야 확보에 용이해야 할 것.
3. 강력한 화력. 전차의 주포는 균질압연장갑 기준 800mm를 관통할 수 있어야 함.

이런 요구사항들을 충족할 신형 전차를 국내 개발 또는 해외 구매/라이센스 생산하여 200~300대를 확보해야 했습니다. 국내 개발이 먼저 시도되었는데 UDES 15/16, UDES 19 컨셉의 확대안 중 전자가 채택되어 2000년대 전차, Strv 2000으로 1984년부터 개발에 착수했죠. 전반적인 컨셉과 형상은 서방 3세대 주력전차와 유사했지만 위 요구사항들을 국내 개발로 충족시키려 여러 특징들이 엿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런 특징들은 프로젝트가 엎어진 오늘날까지도 Strv 2000이 전설적인 전차로 회자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전차 중량을 극적으로 늘리지 않고 목표 방어치를 달성하기 위해 갖가지 신기술들이 도입되었습니다. 세라믹과 금속 재질을 조합한 복합장갑을 피탄시 치명적인 부위에 우선적으로 적용했고 이스라엘산 블레이저 폭발반응장갑(ERA)을 차체 전면/측면에 장착했죠. Strv 104에 ERA를 장착하며 얻은 경험이 크게 작용했죠. 또한 M1 에이브럼스와 유사한 포탑 후면의 탄약고+방폭패널이 적용되었습니다. 중량대비 방어력을 획기적으로 늘려주는 복합장갑과 화학에너지탄뿐만 아니라 날탄으로 대표되는 운동에너지탄에도 효과적인 ERA의 조합으로 목표 방어치를 달성할거라 예상되었습니다.

당대 등장한 T-72, T-80 개수형을 효과적으로 격파하기 위한 주포로 가장 먼저 언급된건 라인메탈제 120mm 활강포입니다. 각국 최신예 주력전차에 적용될만큼 훌륭한 주포지만 개발진은 이걸로도 목표치를 달성하기 힘들거라 예상했죠. 1980년대 중반에 등장한 DM23 날탄 관통력을 보면 근거가 나름 있지만... 
그래서 채택된게 140mm 주포죠. 동일 구경의 주포를 장착한 M1 CATTB, Pz 87-140처럼 극적인 화력 강화는 자명했으나 여러 문제점들이 부각되었습니다. 무게와 크기 둘 다 늘어난 포탄은 탄약수가 장전하기 매우 힘들었으며, 주포의 크기도 기존 포탑에 장착하려니 너무 거대했고 장갑차나 보병같은 소프트 타겟에게 140mm는 과도한 화력이였죠. 따라서 여러 변경 사항들이 전차 설계에 적용되었습니다. 
우선 자동장전장치를 적용해 승무원을 3명으로 줄이며 느린 장전속도를 극복했고, 140mm 주포를 장착하며 차체 전고를 높이지 않기 위해 차체/포탑을 재설계했습니다. 또한 경장갑차량/보병 대응용으로 40mm 보포스 기관포를 동축기관포로 도입해 20~30여발밖에 안되던 140mm 탄약 적재량을 보완하려 들었죠. 이에 더불어 7.62mm 기관총 두 정을 탑재했는데 하나는 동축기관총, 또 하나는 대공기관총으로 부착했습니다. 한 문헌에 따르면 메르카바 전차의 케이스에서 따와 박격포까지 장착할 수도 있었을거라 하더군요.

이외 최신예 C3I까지 탑재해 화력 목표치를 어렵잖게 달성할수 있었죠. 남은건 55톤으로 늘어난 차체 중량인데, 1989년부터 시험에 들어가던 외제 주력 전차에서 본따와 MTU 883 1500마력 파워팩으로 준수한 기동성을 유지했습니다. 뛰어난 방호력, 준수한 기동성, 140mm와 40mm로 대표되는 훌륭한 화력까지 기갑거포주의에 걸맞는 이 아름다운 물건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냐고요?



모든 밀덕들의 꿈과 별개로 현실은 잔인하기 마련. 개발비는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생산에 돌입한다고 해도 그 비용은 시험중인 외산 전차만큼 경제적일거라는 보장도 없었죠. 기존 120mm 활강포를 장착하는 형식, Ikv 91 또는 CV90에 140mm를 올리는 염가형도 고려되었지만 프로젝트 자체가 돈먹는 하마나 다름없을 따름. 결정적으로 냉전이 종막되며 신형 주력 전차의 가치는 빛바래졌습니다. 
결국 시제 차량은 커녕 목업밖에 제작되지 않았을 1989~1990년에 세 외산 전차가 시험에 들어섰습니다. M1A1 에이브럼스, 레오파르트 2, AMX-56 르끌레르 중 레오파르트 2가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고 1991년 프로젝트가 취소되고 중고 레오파르트 2A4를 Strv 121이라는 제식명과 함께 대여 도입합니다. 이후 레오파르트 2A5를 바탕으로 몇 가지 개수를 거친 후 스웨덴 국내에서 라이센스 생산하여 Strv 122로 Strv 121를 모두 대체했죠.


최후의 승자 Strv 122의 짤과 언제 올라올지는 모를 차기 포스팅 후보와 함께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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